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인 넥슨의 '경영 참여' 선언에 게임업계는 물론 증권시장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택진 대표의 임기가 오는 3월 28일로 만료된다는 점에서 넥슨의 경영 참여 선언이 양사간의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으로 이어질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캐주얼 명가' 넥슨과 'RPG 명가' 엔씨의 만남, 시작은 2012년
서울대학교 공대 선후배 관계이기도 한 넥슨의 김정주 회장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의 '깊은 관계'는 지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2년 6월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였던 김택진 대표가 자신의 지분 14.68%를 8,045억 원에 넥슨의 일본 법인(넥슨재팬)에 매각한 것이다.
막 대선에 접어드는 즈음이기도 하고, 마침 IT출신 인사인 안철수 의원의 출마설이 비중있게 보도됐던 터라 증권시장에서는 김택진 대표가 '8천억'의 실탄을 이용해 정계에 진출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동안 김택진 대표가 본인의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게임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런 문제를 떠나서, '캐주얼'게임의 대표주자인 넥슨과 RPG 명가인 엔씨소프트가 서로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우리나라 게임시장의 성장에 한계가 보였던 만큼 넥슨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과 엔씨소프트의 개발력이 힘을 합치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많았다.
이후 양사는 세계 최대의 게임 업체인 EA(Electronic Arts)를 공동 인수해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고,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공동으로 개발을 추진했던 RPG <마비노기2>도 프로젝트도 사실상 폐기되면서 지속적인 협업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 '분쟁의 징조'는 지난 10월에 이미 있었다
지난 2014년 10월, 넥슨은 주당 13만원 대까지 추락한 엔씨소프트의 지분 0.4%를 공개 매수 형태로 추가 인수했다.
이것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지는데, 증권거래소(주식시장)에 등록된 상장회사의 지분 15% 이상을 보유하면 공정거래법상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신고를 승인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도 가능해진다.
당시만 해도 넥슨은 추가 지분매입에 대해 "엔씨소프트의 주가 하락이 기업의 본질 가치보다 크게 낮다고 판단했다"며 투자사로써의 주가 부양을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의 지분 추가 매입에 대해 넥슨과 엔씨소프트 경영진 간의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두 기업 간의 밀월관계에 흠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김택진 대표가 2014 지스타에서 "넥슨이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밝혔는 데도 여러가지 루머가 난다"며 선을 긋고, 이후 적극적인 현장 행보를 보이면서 루머는 가라앉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과 4개월 여 만에 넥슨이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두 기업 간의 경영권 분쟁 논란은 다시 점화되는 양상이다.
■ 넥슨의 '경영 참여' 선언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
이제 관심사는 3월로 예정되어 있는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다. 김택진 엔씨소프트의 임기는 2015년 3월 28일까지로, 그 전에 주주총회를 소집해 김택진 대표의 임기를 연장해야한다. 이 때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인 넥슨이 반대표를 던지면 김택진 대표의 임기도 불안정해 질 수도 있다.
넥슨이 '경영 참여'로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한 시점을 지금으로 선택한 것이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주주제안은 주주총회가 열리기 6주 전까지 완료해야하는데, 넥슨이 주주제안을 통해 김택진 대표를 교체하거나 김택진 대표의 측근 인사를 이사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수도 있다. 최근 엔씨소프트는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김택진 대표의 부인이기도 한 윤송이 CSO를 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김택진 대표의 '친정 체제'를 강화한 바 있다.
김택진 대표 체제는 유지하더라도, 즉 넥슨이 김택진 대표의 연임에 찬성하는 대신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 15%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엔씨소프트에는 넥슨측 이사나 감사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엔씨소프트의 이사나 감사에 넥슨측 인사를 선임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시나리오도 게임업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김택진 대표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적어도 주주총회 이전까지는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넥슨의 엔씨소프트 M&A, 실제로 가능할까?
현재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 지분은 9.98%로, 여기에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더해도 10%대 초반으로 넥슨이 보유한 엔씨소프트 지분 15%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넥슨이 엔씨소프트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를 시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우선 엔씨소프트는 8.93%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비상시 엔씨소프트가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백기사'에게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지분으로 포섭할 수 있다. 이 경우 김택진 대표의 우호지분은 20%에 육박해 넥슨이 보유한 지분보다 많아진다.
가격도 문제다.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인수합병하려면 적어도 25 ~ 30%의 지분은 있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넥슨의 엔씨소프트 '경영 참여' 공시 이후 엔씨소프트의 장외거래가격은 주당 20만원을 돌파했다. 적대적 M&A가 본격화될 경우 주당 30만원에 육박하는 엔씨소프트의 지분 10%를 추가로 인수하기 위해서는 많게는 수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넥슨으로써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변수는 엔씨소프트의 지분 6.88%를 보유한 3대주주 국민연금의 선택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공적기금이라는 특성상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주주권 행사를 통한 주주이익 보호라는 명분으로 주주총회에서 투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도전자'의 입장인 넥슨의 입김이 강해질 수록 엔씨소프트의 주가 상승 압력도 커지는 만큼 국민연금이 예상 외의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
다른 분석도 있다. 넥슨이 이미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인 만큼, 여기서 5%의 지분을 더 확보해 엔씨소프트를 넥슨의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목적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경영은 계속 김택진 대표가 이어나가되, 엔씨소프트의 매출과 이익을 넥슨의 자회사로 편입시킴으로써 넥슨의 덩치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간의 '신뢰관계' 회복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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